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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本家)

대곡동77 과 나의 대구생활 50년

대곡동77


2년전 추석때


벌써 30년전 이야기네요. 


1970년 청주에 살다 대구에 와서 76년에 결혼 신천동 단칸방에 1년, 효목동에 5년 살다가

82년 복현동 시영 아파트 15평에 3년 살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중 첫 집을 사고 최고 기분이 좋았다.

85년 승진하여 청송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황금동 대단지 아파트가 생기면서 대구 부동산이 확 풀렸다

 별 생각없이 3년후에 다시 와서 집을 사면 되지 하면서 복현시영 아파트를 팔았다. 

그 후로 집이 없어 고생 많이했다. 집주인도 잘못 만나기도 했고

우리 마누라 아이들 황금동 2층 셋방 11년 정말 힘들게 살았다.


청송과 진보에서 사택살다가 대구에 집이 없어 86년 왜관와서 삭월세 한달에 40만원에 살았다.

5년 무주택자에 만 35세 이상 아파트 신청하는데 우선순위라 했다.

매월 60만원씩 주택청약 부금을 넣기도 했다

증명서류가 한 웅큼, 대구의 지산동 상인동 월성동 등에 8번 신청 추첨에서 모두 떨어졌다.

고산에 중고아파트 사려는데 대구 처남께서 한번 더 신청해보라하여

대곡 청구에 9번째 당첨됐다.

그것도 33평 매번 신청하다가 작은26평으로(주택은행에서 아가씨가 권유해서) 

88년 부터 3년공사 91준공, 당시 대구에서 제일 잘나간 청구 22층 최고층 26평 5036만원 

당시 대구 최고값 평당 188만원이었다. 지진까지 고려해서 튼튼하게 지었다 했다.


88년 왜관에서 대구로 발령이 났다. 

수성학군 최고라고 아이들 잘 되라고 황금동 주택2층 독채3칸 11년간 전세로 살았다.

결국 준공후 새 집에 한번 살도 못하고 전세주었다. 

85년 복현동15평 590만원 받고 팔았는데, 3년후 10배 오른 6000만원 되어서

집이 없어 나도 전세살다.

그 집 판 돈은 청송에서 5 공화국 때 전화국 전국광역화 2천만 회선 성공,

오지 텃세도 있고 윗 분 잘못 만나기도 했고 거의 비포장 도로 발파 등 큰 고생하고

아파서 병원 입원도 하고 돈을 다 까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게 다 운명일까?
복현시영에 같이 산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는 15평에서 33평으로 지금은 49평이라면서 자랑~

대구 본부에 91년 근무하던 그 시절이다.
난 돈 다 까먹고 하나도 없는데  ㅠㅠ 

내 같이 집팔아 그런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그것도 다 팔자인가 보다.

그런데그 친구는 몇 년 지나서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다.

그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8년후1999년 아이들도 대학 가고 대곡동77  청구타운으로 이사했다
좋았다 집은 작아 살림 다 줄여서 ~

14년만에 내 집으로 그러다보니 집들이 잔치 회식 정말  많이했다.

그러다가 마누라 허리 디스크로 고생 많이했다.

나의출근시간은 1시간 반에서 10분으로 너무 좋았다.

1년 살고는 아들들이 장성해서 집이 좁아 이사를 다시갔다.
큰아들 제대도 하고.. 상인동 33평 아파트 너무 최고로 좋았다 막내아들은 1년 있다가 군대가고..

큰 아들은 나의 잦은 전출로 초교를 5개나 다녔다. 내가 큰 아들에게 제일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아들 둘다 초중고 12년 개근했다.  둘 다 육군 병장 제대해서 우리집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퇴직금을 미리 중간 정산 받았다 그 돈으로 송현주공 샀더니

2년후 재개발 되어 돈을 많이 벌었다.  대곡동 청구는 큰 아들에게 증여했다

2006년 결혼 그 집에서 살다가 2020년 1월 설 이틀 전날 같은 아파트 33평으로 이사했다
잘했다 우리 아들 며느리~ 손자 둘 낳아 잘 살고 있다.


2003년 회사가 민영화되면서 33년 근무하고 명퇴했다. 잘 살고 있던 아파트 팔고 송현주공도 팔았다.

옛날에 집 날린것 회복했다, 다 운명 팔자인가 보다. 덕분에 도서관 가서 2년 넘게 사주명리학

공부를 열심히 해봤는데 내 지나간 과거가 다 맞더라나 뭐라나~ㅋㅋ 그냥 배우던것 접고

2004년 재산 다 끌어 모아서 상인동 83평 원룸으로 이사해서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ㆍ


막내아들은 2007년부터 경주살다가 2011년 결혼 울산에 집을 샀다
내 주식도 다 팔고 경주아파트 전세금과 아들이 열심히 일해 모은돈으로~

아주 잘했다
대구로 둘 다 발령이 나서 도원동 아파트 5년 살다가
이번 설 전날 월성 아파트로 이사했다 손녀 둘 낳아 잘 살고 있다.


형제가 하루차이로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사축하금 100 만원씩 주었더니 올해 우리 칠순이라고 각자 300 만원씩 준다.

우리 부부 4월 말에 유럽에 10국 16일간  여행 신청하고 기다린다.

막내아들 우리집에 20 일 정도 같이 살았는데 술도 거의 매일 많이 마시고 좋았는데

운동도 한동안 안했더니 다리가 아파 치료받고 회복중이다.


신혼 때  아들 둘이라고
셋방도 안주고 설움도 많이 받았다.  대구사람들 많이 서러웠는데~~

지금은 우리집에 열 가구가 같이 산다.

옛날 생각해서 우린 못 된 주인 않되려고 노력한다

나만 홀로 경상도 혼자 내려온지 50년 이제 열식구가 되었다.

우리집 만세 만만세다

오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산다.

내일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억울하지 않게

화이팅 이다. 우리 가족 모두 ~


작년 하반기 부터 파크골프에 푹 빠졌다.

한동안 설과 두 아들 이사로 못 친 골프 이제 다시 시작헤야지

건강하게 살도록 열심히 운동해야지

화이팅이다.


경자년 1월 말일에

       定 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