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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조상(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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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3세 태종대왕 제23세 태종대왕(太宗大王) 방원(芳遠)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1 ㅣ 생애 난세에는 영웅이 있고, 그 영웅은 대개 남과 다른 생애를 살아간다. 또한 그가 태어나는 때에는 보통 용(龍)과 관련된 태몽이 있거나 이와 비슷한 기이한 태몽이 있게 된다. 그것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든 아니든 간에 하여튼 영웅은 잉태되면서부터 남다르다. 태종대왕(이하 태종이라 함)의 삶은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의 생애이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조선이 건국되었고, 그가 왕위에 오름으로 해서 조선왕조 5백년의 기반이 다져졌다. 그리고는 왕위를 셋째 아들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선위하면서 더욱 그 틀을 공고히 하였다.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업적을 남긴 태종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태종의 56 년간의 생애는 이..
[스크랩] 제22세 태조고황제 제22세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성계(成桂) 태조대왕 존형 건원능[ 健元陵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안에 있는 조선 제1대 왕 태조대왕의 능이다. 태조고황제의 탄생과 생애(生涯) 태조강헌 지인계운 성문신무대왕(太祖康獻 至仁啓運 聖文神武大王)의 휘는 단(旦)이며 자는 군진(君晉), 옛 휘는 성계(成桂), 호는 송헌(松軒)이다. 태조고황제(이하 태조로 함)는 1335년(고려 충숙왕 복위 4) 10월 11일 화령부(和寧府 : 永興府)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태조는 나면서부터 총명하였고, 우뚝한 콧마루와 임금다운 얼굴(龍顔)을 지녀 신채(神彩)가 영특하고 준수하였으며 지략과 용맹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어릴 때 화령(和寧)과 함주(咸州) 사이에서 놀았는데 북방 사람들이 사냥하는 매를 구할 때 ..
[스크랩] ?제21세 환조대왕 제21세 환조대왕(桓祖大王) 자춘(子春) 20세 도조대왕의 제2남으로 이름은 자춘(子春)인데 자도 자춘이다. 1315년(고려 충숙왕 2)에 탄생하고 고려때에 벼슬하여 영록대부(榮祿大夫)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삭방도만호겸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를 지냈고 1360년(고려 공민왕 9) 4월 갑술일(에는 庚戌日)에 승하하니 46세였다.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환왕(桓王)으로 추존되고 태종대왕이 연무성환(淵武聖桓)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1795년(정조 19) 영흥 본궁(本宮)에 신주를 모실 때, 대신과 예조 당상관을 보내어 4월 27일에 본궁 이안청(移安廳)에서 신판(神板)을 만들어 4월 26일 본궁 정전(正殿)에 모셨다. 3남 1녀를 두셨다. 능은 정릉(定陵..
[스크랩] ?제20대 도조대왕 제20대 도조대왕(度祖大王) 춘(椿) 19세 익조대왕의 제4남으로 이름은 춘(椿)인데 처음 이름은 선래(善來)요, 몽고명은 패안첩목아이다. 함흥(咸興) 송두등리(松頭等里)에서 탄생하여 1342년(고려 충혜왕 복위 3) 7월 24일에 승하하니 고려 조정에서 찬성사(贊成事)를 추증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도왕(度王)으로 추존되고 후에 태종대왕이 공의성탁(恭毅聖度)이라고 존호를 올렸다. 5남 3 녀를 두었다. 능은 의릉(義陵)으로 함남 흥남시 운남면 운흥리 임좌(壬坐)에 있으며 표석(表石)이 있다. 배위는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이니 본적은 문주(文州)요 원나라에서 천호벼슬을 받고 조선조 때 문하시중에 증직된 안변부원군(安邊府院君) 박광(朴光)의 딸이고 7월 23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
[스크랩] 제19세 익조대왕 제19세 익조대왕(翼祖大王) 행리(行里) 18세 목조대왕의 제4남으로 이름은 행리(行里)요, 함경도 덕원(德源) 적전사(赤田社)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천호(千戶) 벼슬을 이어받고 9월 10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태조고황제가 익왕(翼王)으로 추존하고 그 뒤 태종대왕이 강혜성익(康惠聖翼)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능은 지릉(智陵)으로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 임좌 (壬坐)에 있고 표석이 있다. 배위는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인데, 본관은 등주(登州)요, 호장 기열(基烈)의 딸이다. 9월 20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정비(貞妃)로 추존하고 태종대왕이 정숙(貞淑)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능은 숙릉(淑陵)으로 함경남도 문천군 문천면 능전..
[스크랩] ?제18세 목조대왕 제18세 목조대왕(穆祖大王) 17세 양무(陽茂) 공의 아들로 이름은 안사(安社)요, 고려때에 벼슬하여 의주지사(宜州知事)를 지내고 원(元)나라로 들어가 벼슬하여 남경(南京) 오천호(五千戶)의 다루카치(達魯花赤 : 원나라 지방 관청의 장관직)가 되었다가 1274년(고려 원종 15) 3월 10일에 승하하였다. 1394년(태조 3) 11월 6일에 목왕(穆王)으로 추존되고, 그 뒤 태종대왕이 인문성목(仁文聖穆)이라고 존호를 더 올렸다. 1899년(광무 3) 11월 27일에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옛 살던 집터에 고종황제가 친히 쓴 `목조대왕 구거유지(穆祖大王 舊居遺址)' 8자의 비를 세웠고, 1900년(광무 4) 1월 18일에는 전주 자만동(滋滿洞)에도 비와 비각을 세우고, 고종황제가 친히 `목조대왕 구거..
[스크랩] 제17세(世) 양무(陽茂) 제17세(世) 양무(陽茂) 16세 인공의 아들로 이름은 양무이며, 벼슬은 장군(將軍)을 지냈다. 배위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전주에 살다가 아들인 목조대왕(穆祖大王)의 삼척 이주(三陟移住) 때 삼척 활기리(活耆里) 로 옮겨 왔고, 거기에서 1231년(고려 고종 18) 별세하여 현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노 동(蘆洞) 신좌을향(辛坐乙向) 준경묘(濬慶墓)에 모셔져 있다. 배위 이씨도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산리(東山里) 묘좌유향(卯坐酉向) 영경묘(永慶墓)에 모셔져 있다. 1899년(광무 3) 4월 16일 고종황제가 준경묘 · 영경묘라고 묘소에 존호(尊號)를 올리고 양쪽에 묘비와 음기(陰記)를 고종황제가 친히 지었다. 그 내용은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개국 초에 삼..
[스크랩] 제16세 인(隣) 제16세 인(隣)(1) 제 15세 용부공의 아들로 이름은 인이고 내시집주(內侍 執奏)란 벼슬을 지냈다. 배위는 남평문씨(南平文氏)로 시중(侍中)을 지낸 문극겸(文克謙 : 1122∼1189)의 딸이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인공이 장성하시자 무예가 매우 교묘하시어 40보 밖에서 버들 잎을 쏘시는데 백발백중하 셨다. 그러나 인공이 전쟁에 패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때 이 소식을 왕이 듣고 삼공(三公)에게 물으니, 부의대부(副議大夫) 황후의(黃後議)가 대답하기를 “인의 재주가 뛰어났는 데도 그리 된 것은 때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다시 말하기를 “경 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이요?”하자, 황후의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대극(奇大極)에게 들었는 데 우리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될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