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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북치등 종중

조상님들 뿌리찾기 과정요약

*** 조상님들 뿌리찾기 과정요약 ***

(康典 형님이 작성)

@@@ 원 인

 ① 福字 源字 고조부님이 1827년 출생하여 1848년 21세로 요절하셨고, 고조모님이 1830년부터 1892년까지 수를 하시여 전북 장수군내에 계자(양자)를 두셨는데 고조모님 별세후 남원 임실군 둔남면 선영하에 합장하신후 그 자손이 일체 왕래가 없어 고향의 의字 기字 강字 어르신들은 산소관리를 큰고조부님 자손들 3종 내지 4종들이 오랫동안 해오셔서 북치등 종중일가들은 막내고조부 자손들은 장수군에 있다는 말만 전해 알고 지내셔서 아주 잊고 살아오셨습니다.

 

② 저희들 청주 형제들은 부모님(自龍)의 구두로 전하는 말씀만으로 조부(原一)이 청주에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남원 장수에 가면 그곳에는 일가친척(5~6촌내지 7~8촌)이 많이 살고 계시지만 조부님이 왜정때 왜놈 순사에게 쫓겨 살다가 증조부님(在儀)(儀相)이 돌아가신후 장례를 모시고 야밤도주해 여기저기 거쳐 청주에 살게 되었으니 아버님은 절대 고향갈 생각말고 살라고 신신당부하시며 고향이야기는 일체하지 않으셨고 평소 보관해오던 전주이씨 세계 가승 1부만 남겨주고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부모님은 한자를 모르셔서 고향찾을 생각을 못하고 살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음.

 

@@@ 과 정

① 1959년 제대후 공백기가 있어 부모님 권유로 가승만 가지고 선조들의

    산소가 많은 남원, 오수면, 둔덕리를 찾았으나 실패함.

② 저희 나이 30을 넘게 되어 전주이씨 종친회 충북지회에 참여하여

    전주이씨 대동약보등 효령대군 3파손 청주분을 받아 공부하는 등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음.

③ 직장에 지기가 있는 청주 미평동 거주 이융학씨를 찾아 현보책 내지 구보를

    복사해다 가승과 일치하는가 여러모로 검토해보며 노력하였음.

 ④ 1990년 공한기가 있어 본격적으로 고향을 찾아나섰음.

    ◦ 청주에서 제적부 발급 ◦ 전거주지 충북 진천군 이월면

    ◦ 충북 진천군 사석면 ◦ 충남 천안군 동면 구도리 - 할머님과 혼인한

      기록이 있어 진외가를 찾다 못찾았음 ◦ 전북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를 찾음

 

① 계남면에서 호적계 전진원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직원들과 함께

    조부님(原字 一字)를 찾다 증조부가 李在儀와 李儀相으로 되어있는 제적을

    발견  하였으며(여기서 증조부님 함자도 알게됨) 자는 李原一 또는 李元一

    로 된 호적에서 부친은 李自龍으로된 동일 호적을 발견하게 됨.

② 제적부 주소지를 찾아 화양리에서 구장직을 보는 분과 당시 92세된 할머니를

    찾아 저희 조부님이 사시던 집을 찾아보고 조부님이 한의원하던 이생원의

    자손이냐고 반겨주셨음

 ③ 노인들이 알려주신 증조부님 산소는 학교 뒷산 큰재 너머에 장사지냈는데

     장소는 모른다고하여 양쪽 골짜기를 전부 찾아다니며

     60여곳의 묘소중 표석 및 비문이 있는 곳은 13곳으로 증조부 함자는 찾지 못함.

④ 원래 우리들 호적부는 1897년부터 1905년까지에 작성되어 그 이상은 기록이

    없어 찾지 못하고 증조부 함자만 찾은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음.

⑤ 마지막으로 가승과 제적부를 전부 정리하여 서울 청권사를 찾아가

    이원재씨와 이남재씨를 만나 사정을 말하고 뿌리를 찾아달라고 호소하자

    조직이사였던 이기량씨를 소개시켜 주셨고 서류를 전부 맡기고 가면

    찾아보고  연락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

 

 ◦ 1990년 5월 26일 청권사 이기량이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자녀 집안이

   북치등파가  틀림없어 북치등 종회 일을 보는 이강선씨를 내일오라고

   하였으니 와서 만나보라고 전화를 주셔서 27일 청권사에 들려 서도면 사시는

   이강선 형님을 만나고 서류를 드리고 자세히 설명하자 전부 검토해 보시고

   오수에 가자고 하여 따라내려가 서도면에서 강선형님이 소장하신

   또 하나의 가승을 찾아 대조해보니 필체가 똑같아 한사람이 쓴게 틀림없다며

   다음날 전주아저씨 댁에 들려 아저씨 가승과 대조한 결과 책크기만 약간씩

   크고 적으며 필체는 똑같아 한분이 써서 집집이 한권씩 나누어준 것인데

   막내 고조할머니가 받아 계자(양자)에게 준 것이 틀림없다고 확인들을 하시고

   다시 오수에 들려 기字와 강字 학열의 어르신들 다섯분께 찾아다니며

   자세히 설명하고 인사드리도록하여 전부 인사 드리고 북치등손 장손을

   찾아 인사했음.

 

@@@ 결 과

◦ 1990년 6월에 오수 삼계면 종친회겸 단합대회에 가서 28세대가 모인 자리에서 강선형님이 자세히 설명하고 가지고간 가승 복사본을 나누어 드리고 막내고조부 자손이 틀림없다고 설명하자 장수 산다는 자손이 찾아왔느냐고 일가분들이 크게 반기고 환영해 주셔서 조부님때부터 찾지 못했던 부모님이 한생전 염원하셨던 숙원을 130여년만에 풀어 고향을 찾았습니다.

◦ 1992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 1993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 1994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 1995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 1996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시사답 구입논의)

◦ 1998년 시제참석 묘소참배 고조부님 산소이장 권고 받음

◦ 1999년 3월 30일 고조부님 산소 이장 비문에는 5대조부 석字 만字님이 4형제를 두셨는데 장字 민字 원字와 3째 준字 원字의 자손들은 전부다 자손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넷째 복字 원字만 가세가 기울어 자손들의 소식이 단절되었다가 이제 현손인 강전(덕전)등이 청주에서 뒤늦게 찾아와 비문에 새기고

이장을 하게 되었다는 내역을 이강선 형님이 글을 짓고 새겨 이장을 완료하였으며 주관은 저희 형제들이 주최하였음.

◦ 2000년 시제 참석 (재실)

◦ 2001년 시제 참석 (재실) 9. 16 금초 성묘

◦ 2002년 시제 참석 (재실) 9. 10 금초 성묘

◦ 2003년 북치종중 종친회 (전주 거행)

◦ 2003년 북치종중 하계모임 7. 26~27 임실군 삼계면

◦ 2004년 북치종중 정기총회 (전주개최)

◦ 2004년 시재 참석 (묘소참배)

◦ 2005년 북치중종 정기총회 (서울 서초구 방배동 청권사)

◦ 2005년 시재 참석 (묘소참배)

◦ 2005년 산소 금초 참배 (9월 8일)

◦ 2006년 정기총회 (경기 포천 소홀면 고림군 산소 참배)

◦ 2006년 시재 참석 (묘소참배)

◦ 2006년 산소 성묘 및 금초

◦ 2007년 정기총회 (임실 오수)

◦ 2007년 시재 참석 (묘소참배)

◦ 2007년 5월 19일 보첩 건서도 방문

 

※ 고조부님 산소 이장후 저희 형제들만 시재 및 정기총회에 참석하여

     시재 제물도  전부 부담하는데 비해 (족보에 원손으로 입적됨

 

     보책에 편입적한 상字 선字 자손들은 일체 참여치 않고 있음.

     (족보에 系子)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