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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북치등 종중

[스크랩] 제27세 춘성정

제27세 춘성정(春城正) 담손(聃孫)

 

고림군의 4째 아들로 서기1490 성종21년 출생하였으며

배위는 신인(愼人)순천김씨(順天金氏) 이다.

슬하에 자녀 업어 장형 칠산군(漆山君)의 三子 혼(渾)을 입양함

 

墓所 : 任實郡 三溪面 坌土洞 艮坐 上下 封

 

 

 

 

 

 

 

 

 

27세 창선대부 춘성정(春城正) 담손

        성종21년 (1490 ~  )

 

ㅇ 태조대왕의 6세손  효령대군의 증손  이름 : 담손(聃孫)  호: 春城

ㅇ 연산군 갑자년(1504) 14세때 갑자사화를 피해 落南 둥덕리에 자리함 

    둔덕이씨의 입향파시조(入鄕派始祖)

    *** (갑자사화 - 연산군 생모 폐비사건으로 피바람 제거 및 숙청)

ㅇ 섬진강 상류 오수천 율천 세도천의 三溪가 합류(合流)하여 흐르고

    노적봉이 보이는 전형적인 취락형태(안채 사랑채 대문채) ㄷ 자형 집

    →고종7년(1870년) 공의 6세손 이문극에게 내린 "효자정문" 현판걸림

       현 17세손 ' 이웅재 '가 전북 민속자료 제12호 문화재"

 

ㅇ 배 순천김씨 김만보(사짓 벼슬) 딸과 결혼  처가에서 난(사화) 피함

ㅇ 피난시 형 칠산군(37세) 처가 경북 고령 신씨 - 남원 추측

    고문서 309점 전북대 박물관에 보관

ㅇ 아들이 없어  형 칠산군의 셋째아들 "渾"을 양자  -  좌승지 오름

                                                     혼의 아들 → 大胤 慶胤

ㅇ 묘 : 전북 임실군 삼계면 삼은리 분토동 산52

   - 재실있슴      전북 임실

   - 종가 고문서 해설서: < 조선시대 남원 둔덕방의 전주이씨와 그들의 문서(1) >

                                  전북대학교 박물관

 

***묘비문 국역문***

 

증 창선대부 춘성정 행    창선대부  춘성부정  이공  담손의 묘

신 부인    순천김씨   부

 

왕족이 어질고 후덕하여 번성함이 조선조보다 성한적이 없었고 그 근본(자손)이 번영함 또는 효령대군의 자손보다 성한적이 없었다. 효령대군께서는 태종의 왕자로 옛날 중국 주나라 왕실의 우중(虞仲)의 지주했던 덕처럼 후손들에게 드리운 음덕이 무궁하였다.

 

효령대군의 휘는 보(補)이시고 공은 그 종손이시다. 이씨는 전주로부터 나왔고 목조께서는 함흥에 터를 잡고 왕업의 토대로 삼았다. 태조대왕께서 왕위에 올라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고, 공께서 남원(둔덕방)에 내려와 살게 되니 우리터를 잡으신 할아버지로 옛날 毛公과 僞公처럼 지방에 살며 왕실을 도왔다. 공의 휘는 담손(聃孫이시고 춘성부정(春城副正)이신데 후에 정(正)에 증직되셨다.

 

아버지는 고림군(高林君) 휘(薰)이시고 할아버지는 서원군(瑞原君) 친이시며 어머니는 현부인 영일 정씨로 이조참판에 증직된 자숙의 따님이요 정숙공 연의 손녀이시다.

배 신부인 순천김씨는 부사직 만보의 따님이요 평양부원군 양경공 승주의 5세손이다. 순천김씨는 남원부중의 명문이다.남원 (둔덕방)북쪽 말천의 분토동 간좌에 합장한 묘가 공가 배위를 장례한 묘인데 7월16일과 6월12일이 공과 부인의 기일이다.

 

아들이 없으니 같은 어머니 소생인 형 칠산군(漆山君)의 셋째 아들로 승지에 증직된 혼(渾)을 후사로 하였다. 승지의 아들 대윤(大胤)은 문과로 정랑에 올랐고 참판에 증직되셨다. 다음은 경윤(慶胤)이고 딸은 좌랑 이대유에게 출가하고 대윤의 아들 엽(曄)은 동지 중추부사인데 판서에 증직되셨다. 엽의 아들 유형은 금부도사이고 다음은 국형 지형 필형이다. 딸은 부사 최보 진사 고부량 찰방 성전에 출가하였다.

욱(昱) 의 아들 상형(尙馨)은 홍문관 교리이다. 내외 자손이 수백여명된다.

 

옛날 세운 묘비가 결이 일고 마멸되어 알아볼수없고 난리를 겪으면서 가승이 전하지 않아 생존연대를 알수없고 아름다운 말씀이나 훌륭한 행장이 모두 상세히 전하지지는 않는다. 오직 믿을만한것은 공은 왕실의 공자로써 화려하고 번영을 누릴수있는 연을 버리고 향리에 물러나 자손을 위한 덕업을 끼쳤으니 지금에 이르러 수백년동안 경사가 이어지고 자손이 번창함에 있으니 이로써 공의 덕을 알겠다.

 

                        승정기원후 재 정유  숙종43년  월  일  세우다.

 

                                      칠대손     이 근 삼가 적고

                                      육대손     익제  삼가 쓰다.

          

 

 

 

출처 : bloglkh7700
글쓴이 : 삼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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