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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경북

영남대민속촌 일휴당 고분군 경주맞배집 정려문

 

일휴당(日休堂)

 

일휴당은 원래 안동 예안 오천동에 있었던 건물로 1974년 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

주인인 금응협(琴應夾)은 퇴계선생 문하에서 수학한 오천 7군자 중의 한 분으로

 중종 21년(1526년)에 태어나서 선조 29년(1596년)에 돌아가신분이다.


금응협은 고려 명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금의(琴儀)의 후손으로

 쌍송정의 주인인 금혜에게는 현손이 된다.

봉화 금씨는 대대로 학덕을 높이 쌓은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여

 조선조에는 영남의 문벌가였다.


일휴당은 그 주인인 금응협에 의해 선조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전해내려 오는 당기(堂記) 또는 창립관계 문서가 없어 확실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현존하는 "일휴당(日休堂)" 현판은 건축할 당시의 것으로

 퇴계이황이 제자인 금응협에게 써 준 것이라 한다.


이후 일휴당은 금씨 문중에서 관리되어 오다가

정조 11년(서기 1787년)에개축되었다.

 일휴당은 이때 개축된 것이다.

 

 

경주 인왕동 고분군 이전복원지

여기에 이전 복원되어 있는 경주 인왕동 고분군은

 1977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무덤들이다.


당시 조사에서는 항아리무덤 7기, 항아리돌덧널무덤 1기, 돌덧널무덤 9기,

돌무지 나무덧널무덤 10기 등 총 2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는 보기 드문 예라 이를 원상 그대로 복원하자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고,

현장에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여서 이 중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적석목곽분 11기, 석곽분 8기를

영남대학교 안의 민속원에 이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경주맞배집

경주맞배집은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내에 형성된 취락지의 건물 중 하나로

 1977년 5월에 현 위치로 이건해 왔다.

이 건물은 좌측으로부터, 퇴를 합한 넓은 부엌 1칸과 툇마루를 낸

 안방, 대청, 건너방(사랑방)이 각 1칸 순으로 배열된 一字형 집이다.

그리고 부엌은 앞문과 뒷문이 판문으로 되어 있어 전후로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주 맞배집의 아름다움은 소박함과 간결한 맛에서 나온다.

홑처마에 처마의 끝만 가볍게 반전시킨 지붕이나 간결한 띠살문 형태의 방문이나

 자연적인 굴곡을 그대로 살린 여러 가구의 모양새에서 맞배집의 아름다움이 표출된다

 

 

 

 

영남대학 민속촌

일휴당 고분군 경주맞배집

의성김씨정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