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전통 마을.
[명칭 유래]
사촌 마을은 고려 후기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훈신(勳臣)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1212~1300]의 5세손인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안동(安東) 회곡(檜谷)에서 1392년에 입향하였고,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 사촌(沙村)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사촌 마을은 1392년 이곳으로 입향한 김자첨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 후 1750년 무렵 병촌(屛村) 유태춘[류태춘](柳泰春)이 이곳에 이주하여 수백 년 동안 안동 김씨(安東 金氏)와 풍산 유씨(豊山 柳氏) 등이 세거한 반촌 마을이며 1896년 의병을 주도한 마을이기도 하다.
[자연환경]
사촌 마을은 풍수상의 명당으로 마을 뒷산으로는 문필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우측은 광활하여 우백호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우측을 보하기 위하여 사촌의 서편 매봉산
기슭을 따라 길이 약 1,040m, 폭 40m의 방풍림을 조성하여 비보하였는데 이것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다.
수종(樹種)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0여 종이며, 수령(樹齡) 300~600년 사이의 노거수가 많고
수고(樹高) 15~20m로 장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서애 유성룡[류성룡]의 어머니가 1542년 사촌리 친정집에 다니러 왔다가 이 숲에서
유성룡[류성룡]을 출산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며,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해 고택
*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의성 만취당 *
만취당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제자이며 부호군을 지낸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선조(宣祖) 15년(1582)부터
3년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 하였다. 그 후 숙종(肅宗) 32년 (1711)부분적인
보수가 있었고, 영조(英祖)3년(1727)에는 동쪽 방(복제-復齊)을 동왕 40년(1764)에는 서쪽 방을 증축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T' 자형이고 우물마루와 온돌방이 꾸며져 있으며,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8)과 함께 가장 오래된 사가(私家)의 목조건물로 꼽힌다.
현판의 글씨는 김사원과 동문인 명필가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
후산정사(後山精舍)
후산정사(後山精舍)는 의성 사촌리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이황의 제자
김사원(金士元, 1539~160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김사원의 호는 만취당(晩翠堂), 본관은 안동이다. 천성이 어질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았으며, 자라서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사원은 지역 유림의 추대를 받아 ‘의성 정재장(義城整齊將)’으로 활약했다.
전란이 평정된 후에는 이재민 구휼에 나서 거주지를 잃은 많은 백성들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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