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78) 썸네일형 리스트형 [스크랩] 제17세(世) 양무(陽茂) 제17세(世) 양무(陽茂) 16세 인공의 아들로 이름은 양무이며, 벼슬은 장군(將軍)을 지냈다. 배위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전주에 살다가 아들인 목조대왕(穆祖大王)의 삼척 이주(三陟移住) 때 삼척 활기리(活耆里) 로 옮겨 왔고, 거기에서 1231년(고려 고종 18) 별세하여 현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노 동(蘆洞) 신좌을향(辛坐乙向) 준경묘(濬慶墓)에 모셔져 있다. 배위 이씨도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산리(東山里) 묘좌유향(卯坐酉向) 영경묘(永慶墓)에 모셔져 있다. 1899년(광무 3) 4월 16일 고종황제가 준경묘 · 영경묘라고 묘소에 존호(尊號)를 올리고 양쪽에 묘비와 음기(陰記)를 고종황제가 친히 지었다. 그 내용은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개국 초에 삼.. [스크랩] 제16세 인(隣) 제16세 인(隣)(1) 제 15세 용부공의 아들로 이름은 인이고 내시집주(內侍 執奏)란 벼슬을 지냈다. 배위는 남평문씨(南平文氏)로 시중(侍中)을 지낸 문극겸(文克謙 : 1122∼1189)의 딸이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인공이 장성하시자 무예가 매우 교묘하시어 40보 밖에서 버들 잎을 쏘시는데 백발백중하 셨다. 그러나 인공이 전쟁에 패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때 이 소식을 왕이 듣고 삼공(三公)에게 물으니, 부의대부(副議大夫) 황후의(黃後議)가 대답하기를 “인의 재주가 뛰어났는 데도 그리 된 것은 때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다시 말하기를 “경 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이요?”하자, 황후의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대극(奇大極)에게 들었는 데 우리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될 때에는.. [스크랩] 제15세(世) 용부(勇夫) 제15세(世) 용부(勇夫) 14세 궁진공의 장남으로 이름은 용부요,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에는 대장군 겸 태자청도솔부솔(太子淸道率府率)을 지냈다고 하였다. 배위는 정승을 지낸 이형(李珩)의 딸이다. `대장군'은 고려 무관의 벼슬로 상장군(上將軍) 다음, 장군(將軍)의 위로 종3품이었다. `태자청도솔부'는 태자좌청도솔부(太子左淸道率府)의 준말로 고려 때 동궁(東宮)의 시위(侍衛)를 맡은 관청이다. 그 관청의 장이 부수(府率)일 것이다. 에는 이렇게 덧붙여져 있다. `용부공은 3세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만 계신데, 남의 모함을 받아 세살배기가 잘못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 때 16세 된 누님이 한 분 계셨고 공은 겨우 말을 익히는 때였 다. 마침 금(金)나라의 난리를 만나 중국 송나라 정부에서 군.. [스크랩] ?제 14세(世) 궁진(宮進) 제 14세(世) 궁진(宮進) 13세 진유공의 아들로 이름은 궁진인데 한림(翰林)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에는 호장을 지냈다고 하였다. 배위는 장군을 지낸 이요(李?)의 딸이다. 에는 이런 이야기가 더 들어 있다. `궁진공이 15세에 아무개[失名]에게 나아가 배우는데, 그 선생이 낮에 꿈을 꾸었다. 꿈에 궁진공이 물고기를 잡아 양을 타고 올 때 달이 동산에서 뜨는데, 용이 머리를 북쪽으로 들 고 꼬리를 낮게 하고 서고, 천병만마(千兵萬馬)가 북 치고 구호 부르며 행진하는 꿈을 꾸었 다. 그 선생이 그 꿈을 풀이해 보니 조월(早月 : 朝) 어양(魚羊 : 鮮)에 신령스러운 물체가 도와 응하는 격이라, 괴이히 여겨 감탄하다가 혼자 말하되, “별것 아닌 것 같으나 후일에 반드시 기쁜 일이 있으리라” 하고 스스로 .. [스크랩] 제13세(世) 진유(珍有) 제13세(世) 진유(珍有) 12세 화공의 아들로 이름은 진유라 했는데 벼슬은 생원 호장을 지냈다. 그러나 에는 일명 유진(有珍)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배위는 첨대중찬사(僉隊中贊事) 오대박(吳大朴)의 딸이다. 에는 이런 기사가 더 들어 있다. `진유공은 처음에 집안이 가난하였으되 지극한 효도로써 어머니를 받들더니, 부인 오씨가 시집와 아내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가난하되 편안해하고 분수를 잘 지키며, 채소를 뜯어다 호구지책을 삼으면서 어버이 섬기기를 지극히 효도롭게 하니, 세상 사람들이 항상 효자 효 부라고 칭하였다.' 와 에서는 진유공의 이름을 천균(千鈞) 또는 천준(天俊)으로 표기하 고 어머니를 김씨로 표현한 외에는 대체로 과 같은 내용이다. 출처 : bloglkh7700 글쓴이 : 삼봉 원글보기 메모 : [스크랩] ???제12세(世) 화(華) 제12세(世) 화(華) 11세 충민공의 아들로 이름은 화인데 추밀(樞密) 벼슬을 지내셨다.배위는 대언(代言) 벼슬을 한 황진(黃璡)의 딸이다. '추밀'은 고려 때 왕명의 출납(出納) · 숙위(宿衛) · 군기(軍機) 등을 맡아 다스리는 관서 추밀원(樞密院)에 딸린 관원으로 추밀원사(樞密院使) ·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가리킨다. 종2품 · 정3품 벼슬이었다. 그리고 `대언'은 왕명을 출납하는 벼슬로 승선(承宣)이라 고도 했는데, 나중에 승지(承旨)가 되었다. 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화공은 처음에 집이 가난했으나 집안 일은 돌보지 아니하고 술집과 기생집에만 다니며 자칭 협객(俠客)이라고 했는데, 부인 황씨가 홀로 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강도를 만 났으나 끝까지 절개를 잘 지켰다. 청림태수(靑林太.. [스크랩] 제11세(世) 충민(忠敏)? 제11세(世) 충민(忠敏) 10세 경영공의 아들로 이름은 충민이고 벼슬은 장사(長史)이었다. 배위는 대장군 최오헌(崔五憲)의 딸이다. `장사'라는 벼슬은 고려 때 동궁관(東宮官)의 관직으로 품계는 종7품이었으며, 또 육위(六衛)에 속한 종6품의 장사도 있었다. 조선조 때도 이런 관직이 있었는데, 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에 속해 있었다. 에는 이렇게 덧붙여 있다. `충민공은 처음에 생활이 몹시 곤궁하여 의탁할 데가 없었는데, 하루는 별안간 청의동자 (靑衣童子)가 나타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어 천명을 알지 못하고 대개가 하늘과 사 람들을 원망하는데, 그대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들을 허물하지 않으면서 천명을 기다리 니 어째서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답하시되, “궁하고 통달함이 모두 운명에 달려 있.. [스크랩] ??제10세(世) 경영(景英) 제10세(世) 경영(景英) 9세 충경공의 아들로 이름은 경영이다. 벼슬은 생원 호장이었다.배위는 유수(留守) 윤필인(尹必仁)의 딸이다. `유수'는 수도 이외의 인근 도시 또는 행궁(行宮)에 두던 특수한 지방장관이다. 고려 ·조선조에 걸쳐 두었는데 중앙 관서의 직속 기관이었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경영공이 7세에 부모가 함께 돌아가시니 증조모 정씨(鄭氏)가 등에 업고 구걸하면서 키 워 16세가 되어 유수 윤필인의 딸에게 장가가셨다. 윤씨 부인은 증조모 정씨를 섬길 때, 증 조모 정씨가 나이가 많고 치아마저 없자 윤씨는 자신의 젖을 짜서 지성으로 효도하여 천수 를 마치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효성스런 손부라고 칭찬했다.' 와 에도 똑같은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러하다. 경 영공.. 이전 1 ···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