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뿌리/북치등 종중

[스크랩] 제30세 욱(昱)

제30세 욱(昱)

 

경윤(경윤)의 아들로서 서기1555(명종10)을묘(乙卯) 9월 21일 출생하였으며 시기1608(선조40)무신(戊申)년 5월15일 졸

묘소 : 임실군 오수면 용정리 선고묘계하 축좌(丑坐)

 

배위 : 장흥임씨(장흥임씨) 서기1553(명종8)계축(癸丑)년 5월 22일 출생하였고 서기1634 갑술(甲戌)년 5월 1일 졸함 (수83세)

묘소 :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 호창산 묘좌(卯坐)

 

슬하에 자녀는 4남 1녀다

 

제1자 승형(升馨)

제2자 상형(尙馨)

제3자 인형(仁馨)

제4자 종형(終馨)

제1녀 유영남(柳永男)

 

 

휘 욱(昱)   자 :여회(汝晦)    명종10년(1555~1608)선조41년

 

                                          묘: 전북 임실군 오수면  용정리 (부모 묘하)

                     배: 장흥 임씨  묘: 전북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 (호창산)

 

■ 원문 국역문 

충의 위       이 공   욱(昱)          묘갈명

 

둔덕방의 용정촌은 충의위 이 공(욱)이 그 아버지 어모장군 (경윤)공에 이어 장사 모신곳으로 이공 욱은 천묵재 선생의 아버지이시다.

내가 일찍이 어묘장군의 묘 비문을 적은 바 있어 성씨의 출처나 세덕은 이미 상세히 적었으므로 이는 다시 적지않는다. 공의 자는 여회이시고 명종 을묘(명종10년 1555)년 9월21일에 태어나서 선조 무신(선조41년 1608)년에 향년58세로 5월15일에 별세하셨다.

부인 장흥임씨는 첨지 대영의 따님으로 부덕을 갖추었다. 공보다 2년 먼저 태어나 공보다 26년 후에 돌아가시니 그 묘소는 호창산 묘좌이다.

공은 14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스물세살에 아버지 돌아가시니 상례를 치르고나서 계모 최씨를 모심에 선혼정성을 폐하지않고 병환에 약탕을 손수 다려 맛보고  드리며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대소사를 반드시 듣고 그를 재결하니 최씨께서 매우 편안히 하시고 비록 소생은 없으나 있는것 같이 하셨다.

공께서 4남1녀를 두셨으니 승형은 일찍 죽고 상형은 천묵재로 인조때 선비로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증직되시고 시호가 충경이다. 인형은 첨지이고 종형은 참봉이다. 첨지 유영남은 사위이다. 문헌은 종사랑이고 문원은 장악원 정에 증직되엇고 문재는 참봉으로 석동집이 간행되어  세상에 전하고, 문영은 이조참의에 증직되고,문계는 진사이고 문중은 통덕랑이고 사인 윤지 참봉 양운지 사인 오첨희는 모두 충경공의 아들이거나 사위이다.

문형 문해 문혁 문기  문관은 첨지(인형) 소생이고 문필은 참봉(종형)소생이다.

후손  성의 팔의 인의등이 서로 일은 꾀하며 말하되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이미 조상의 뜻을 이어 효도를 다하였고 또한 충경공이 자식이 되어 아름다운 명성이 또한 무궁하다 하였다. 옛날에 세운비가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 새로 하는데 나에게 부탁하니 나는 공에게 역시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써 삼가 사실을 이같이 쓰고 명을 엮는다. 공의 자제들이 왕실의 후손이라면 실로 가히 세상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속됨을 경계함에 이를것이요 공의 자제들이 조상의 행실과 뜻을 잘이어 간다면 또한 좋은 가르침으로 자식을 착한일로 인도한다 할것이다. 대저 그 온순하고 공손함과 마음이 너그러운 도량은 한 고을의 착한 선비가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무릇 후생이 공을 알고자 한다면 어찌 이 명의 글을 또한 보지 않으리오.

 

소양협협 숙지하한

은진 송병관 기술하다.

 

 

 

 

출처 : bloglkh7700
글쓴이 : 삼봉 원글보기
메모 :

'뿌리 > 북치등 종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32세 문중(文中)  (0) 2013.10.23
[스크랩] 제31세 상형(尙馨)  (0) 2013.10.23
[스크랩] 제29세 경윤(慶胤)  (0) 2013.10.23
[스크랩] 제28세 혼(渾)  (0) 2013.10.23
[스크랩] 제27세 춘성정  (0) 201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