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뿌리/북치등 종중

[스크랩] 제32세 문중(文中)

제32세 문중(文中)

 

천묵제 상형(상형)의 6째 아들로 인조6년 무진 5월 10일 출생하고 정묘 8월 26일 졸함

 묘소 : 임실군 삼계면 산수리 호창산 발인동  병좌(병좌)

 

배위 : 공인 문화유씨(文化柳氏)  인조 임신년 출생 기묘 4월 16일 졸함

묘소 : 임실군 성수면 성산 자좌(子坐)

슬하에 자녀

제1자 성제(聖濟)

제2자 성여(聖與)

제3자 성연(聖淵)

제1녀 최래해(崔來海)

제2녀 정 호(鄭 琥)

 

 

 

통덕랑(通德郞) 문중(文中)

휘는 문중(文中) 자는 토휘(土輝) 인조10년(1632~1687)숙종13년

 

원문 국역문 

    통덕랑 이 공 문중 지묘 

고 통덕랑 전주 이공은 휘가 문중(文中)이고 자눈 토휘(土輝)이시니 즉 충경공 천묵제 선생 상형(尙馨)의 막내아들이고 석동공 문재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을 받아 배움에 근거가 있어 진득하게 궁리하여 철저히 인식하였다. 운명이 어그러져 아직 소년이었을때 세상을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산골에서는 나무하고 밭에서 갈고 일하는데 스스로 분별하여 함께하니 후회하거나 원망함이 없는것은 공의 그 어짐이도다.

장릉 임신(인조10년,1632년)년에 태어나 명릉 정묘(숙종13년,1687)년에 졸하시니 묘소는 호창산 병좌(북향)의 언덕이다. 지금260여 년이 되었는데 후손인 의관 한의와 환의,안의,선의등이 여러 일가들을 이끌어 장차 공의 덕업을 돌에 새기고자 팔의가 행장을 가지고와 정기에게 명을 부탁하나 글 쓸줄 몰라 어찌하겠나마는 공의 조카 성노씨(문원의 자)가 행장을 썼는데 필체가 섬세하고 사무치게 성실하여 글이 가히 증거가되어 신뢰가 잇어 삼가 이를 근거로하여 차례로 내력을 적는다,

 

이씨는 왕족으로써 동방의 우중이신 효령대군 휘 補를 파조러 하여 전하여 춘성정

휘 담손에 이르러 남원에 내려와 처음으로 살게 되었다. 증조 휘 경윤은 어모장군이시고 할아버지 휘 욱은 은덕이 있었고 고 충경공은 사계 김선생의 높은 제자로 경학으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고 충무위 남원 윤덕연의 외조부이시다. 공은 옥과의 현아에서 태어나셨으니 충경공께서 風진에 걸렸는데 5년동안 고질이 되어 밤낮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문지르고 부축하여 몸소 스스로 하였다. 돌아가심에 절도를 넘어 슬퍼 상할정도였고 항상 일찍 고아가 된것을 죽을때까지 아파하였다. 매년 춘추로 성묘하는데 슬피울며 눈물이 땅을 적시니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뒤에 어머니 돌아가시니 늙어서도 조금도 게을리 하지않았다.

천성이 이와같아 재기가 총명하고 명랑하여 눈으로 보면 잊지않고 경서(慶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밀하게 연구 힘써 실천하는데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으면 철저하게 분석하여 반드시 풀어 밝혀야만 그만 두었다. 여력이 있으면 생갇을 맑고 깨끗하게 경계하여 글짓기 공부하니 詩律이 더욱 늘어 입에서 저절로 나와 문득 읊조리면 전해졌다. 

중용과 역학 두책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두었는데 늘 말하기를 이 대학은 팔덕의 문이고 중용은 造道의 극치라하고 처함에 대학의 誠正修齊와 중용의 정일집중의 공부를 더욱 드러내고자하였다. 天 人 心 性  네자의 획을 좇아 뜻을 넓혀 설명하고 體와 用이 서로 변하여 理氣가 하나에서 나누어진 도면을 그리고 음 양 동정의 오묘함과 선과 악의 기틀의 근원을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하여 밝혔다. 

공은 넓고 너그러웠으며 굳고 확실하여 말을 반드시 옛것을 들어 하였고 충정으로 분수에 넘치지 않았으며 일찍이 오만하여 남과 어울리지않는 행위는 하지않아 사람들이 밝고 의젓하다하였다. 이 더러운 세상에 웃고 아양떨며 예쁜태도를 보이지않았다. 일찍이 과거업무를 맡아보게되는데 직무에 불리하여 문득 거두고 돌아와 깊숙이 은거하여 구원에 묻혀 죽을때까지 너타내지 않았다. 슬프다. 명예와 영화를 좋아하고 담박을 싫어함은 사람의 정인데 한번 손을 뻗쳐 쉽게 돌아 다시 잘못을 싹트지않게 하고 안밖으로 살핌에 있어 경중을 분별하니 능하도다. 아! 그 어짐이여,

배공인 문화유씨는 충의위  주의 따님으로 묘는 임실 성산의 임좌(남향)이고 삼남은 성제 성여 성년이고 두딸은 최래해 정호에게 출가하였다. 큰아들 손자는 이명 이백 이진 이발이고 서는 유함장 손의도 유지승이고 둘째아들 손자는 이채이고 막내아들 손자는 이효이다. 증손 검과 점은 이백 소생이고 검은 이명의 후사가 되엇다. 열은 이진이 낳앗고 과 희 붕 건 그리고 권세찬의 처는 이오 소생이고 건은 이효의 후사가 되었다. 필언과 유영일 한정구의 처는 이발의 소생이고 곤은 이채의 소생이다,. 명을 엮는다.

 

아버지 책을 읽고 형님의 가르침을 복수하여 학업이 넓혀지고 덕 또한 높구나 아름다운 옥을 지녔으니 팔지않고 모른다한들 하늘에 서운함이 없겠구나 공은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않다 하지만 락도일진대 천명을 어찌 의심하리오 덕을 기록한 행장은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다하니 한 번 붓을 들어 휘황하게 천마디를 적는다.  

강어 대영헌 유화철(정해 칠월,1947)

서주 정기 삼가 짓다

종 구대손 기정 삼가 쓰다

 

 

 

 

 

 

 

 

 

 

 

 

 

출처 : bloglkh7700
글쓴이 : 삼봉 원글보기
메모 :

'뿌리 > 북치등 종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34세 이효(頥孝)  (0) 2013.10.23
[스크랩] 제33세 성연(聖淵)  (0) 2013.10.23
[스크랩] 제31세 상형(尙馨)  (0) 2013.10.23
[스크랩] 제30세 욱(昱)  (0) 2013.10.23
[스크랩] 제29세 경윤(慶胤)  (0) 2013.10.23